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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딱 한 번만 아이 시각에서 생각했다면…” (2015.1.23)
admin
2018-02-22      조회 8,811   댓글 0  

 

기사본문
[신동아]
 

 

 

2014년 세월호 사고와 함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는 울산·칠곡 계모 사건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아동학대 사건들이었다. 굵직한 사건마다 그 가운데엔 늘 이명숙 변호사(52·법무법인 나우리)가 있었다. 이 변호사는 울산·칠곡 사건뿐 아니라 과거 크게 공론화했던 조두순 사건, 지군 사건, 도가니 사건 등에서도 피해자 편에 서온 여성·아동인권 전문 변호사다. 현재 (사)한국여성변호사회장,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그리고 대한변협 세월호참사특별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이 변호사는 최근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 장화정 중앙아동보호기관장과 함께 ‘우리 모두 아이였습니다’라는 책을 펴냈다. 법률전문가와 정신과 전문의, 그리고 학대 아동을 돌보는 기관의 책임자가 ‘아동학대 근절의 불씨가 될 책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한 것. 책은 그간의 사건들을 회고하며 여전히 남은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세 사람의 대화를 기록했다.

이 변호사는 “수사기관과 정부 관계자, 정치하는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며 “아이 키우는 부모에게도 ‘나는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가’ 자문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이 죽였는데 3년형 이하?

▼ 세 분은 본래 친한 사이인가요.

“10년 전부터 여성·아동 관련 전문가들이 한두 달에 한 번씩 모여 아동학대, 가정폭력, 성폭력 등에 관한 논의를 해왔어요. ‘나·우리’ 모임이죠. 사건이 터지면 며칠씩 붙어 지내며 대책회의를 하고요. 조두순 사건 때는 저희 집에서 새벽 두세 시까지 회의했죠.”

‘나·우리’ 모임에는 이명숙 신의진 장화정 세 사람 외에 이호균 아동행복포럼 고문, 이미경 전 한국성폭력상담소장, 황은영 서울 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검사 등도 참여한다.

▼ 울산·칠곡 사건에는 한국여성변호사회(여변) 소속 여성 변호사들도 참여했죠.

“제가 뜨거운 물에 데어 익어버린 울산 피해 아동의 팔 사진을 보여주면서 참여를 요청했어요. 두 사건의 공동변호인단으로 여성 변호사 165명이 참여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아동학대 사건은 엄마와 같은 세심한 시선으로 다룰 수 있는 여성 변호사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칠곡 사건에서 1심 판결 직전까지 경찰, 검찰, 법원 모두가 ‘11살짜리 언니가 8살짜리 동생을 발로 차서 죽였다’는 진술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요? 이 사건 기록 중 등에 화상을 입은 동생을 학교 선생님이 병원에 데려간 일이 나와요. 아이는 ‘뜨거운 라면을 엎질러 데었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손이나 무릎, 배를 데었어야죠. 나중에 언니가 ‘새엄마가 뜨거운 물을 동생 등에 부었다’고 했습니다. 아이 시각에서 한 번만 생각해보면 될 일인데…. 어느 여성 판사가 제게 전화해서 ‘기록을 보고 너무 부끄러웠다’고 하더군요.”

울산·칠곡 사건은 아동학대 관련 법제도를 정비하는 기폭제가 됐다. 2014년 9월 아동학대처벌특례법이 개정돼 아동학대 가해자에게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게 됐다. 아동학대 사실을 인지하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 관련 제도가 정비됐고, 이번에는 아동학대 관련 제도가 강화됐습니다.

“그간엔 처벌이 너무 약했어요. 최근 형사정책연구원에서 나온 보고서를 보면 2010~2013년 정식 재판에 회부된 아동학대 사건에서 집행유예 판결이 249건 중 115건으로 절반에 가까워요. 아이가 사망한 사건만 보면 징역 3년 이하가 38.1%(21건 중 8건)나 됩니다. 길 걷다 모르는 사람을 죽여도 3년 이하로는 안 되는데 말이죠. 2심에서 징역 18년이 확정된 울산 계모 박씨가 아마도 아동학대 사건 중 가장 무거운 형량을 받은 경우일 거예요. 저는 엄히 처벌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외국에선 부모가 아이를 학대하다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몇 백, 몇 천 년 징역형을 선고하기도 합니다.”

 아동학대 개념 확장해야

 

 

 

이 변호사는 “아동학대에 대한 일반 의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가 10년 전 미국 워싱턴DC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서 ‘최근 심각한 사건이 발생해 비상이 걸렸다’는 얘길 들었는데, 내용인즉 혼자 사는 엄마가 추운 겨울에 아이에게 외투를 안 입혔고, 아이 머리를 자주 안 감겨 이가 생겼고, 성폭력 전과가 있는 남자와 사는 친구에게 아이를 잠깐 맡겼다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나라에선 그 정도를 가지고 아동학대라고 하진 않는데, 미국에선 매우 심각한 아동학대로 여기는 것”이라며 “폭행뿐 아니라 정서적 학대, 방임도 아동학대에 속한다는 것을 부모들이 알았으면 한다”고 했다. 신의진 의원도 책에서 “집이나 식당에서 아이를 조용히 시키려고 휴대전화 게임에 몰두하도록 하는 것도 아동학대의 새로운 유형”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 자녀 체벌에 반대하신다고요.

“우리나라는 자녀 체벌을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라 ‘사랑의 매’라며 회초리 세트를 인터넷에서 팔죠. 울산 사건에서도 친아버지가 계모에게 회초리를 사다줬어요. 회초리가 다 부러지면 다시 사다주는 일을 되풀이했습니다. 저는 딸 둘을 키우면서 한 번도 체벌을 한 적 없어요. 문제가 생기면 대화로 해결했어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덕분에 아이들이 잘 컸다고 생각해요.”

이 변호사의 큰딸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반에서 한 아이가 물건을 훔치고 친구들을 때려서 문제가 됐다. 그 아이가 특히 심하게 구는 날엔 학교에서 아예 아이들을 일찍 하교시켰다.

“그 아이가 우리 딸만은 괴롭히지 않는다고 둘이 항상 짝꿍이더라고요. 딸 얘기가, 짝꿍 얘기를 들어보니 부모와 헤어져 할머니와 사는 것이 무지 슬프다고 했대요. 그 얘기를 들으니 얼마나 속상할지 이해가 됐다는 거예요. 어려서부터 동생과 다툼이 있을 땐 늘 대화로 해결하게 했더니 자연스럽게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익힌 게 아닌가 싶어요.”

이 변호사는 그 아이를 아동복지센터에 보내 놀이치료를 받게 했고, 이후 아이의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간 맡아온 아동 사건 중에 특히 그의 마음에 남은 것은 이른바 ‘지군 사건’이다. 지군은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단기 3년, 장기 3년 6개월 형을 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이 변호사는 “지군은 아동학대에 따른 트라우마가 매우 심했다”라며 “형을 살기보다는 정신 치료를 받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 지군은 어떻게 지내나요.

“2013년 겨울에 지군 생일을 앞두고 그 아이 아버지와 함께 면회를 다녀왔어요. 성경을 열심히 읽으며 잘 지내고 있어요. 교도소에서 검정고시를 봐서 고등학교 졸업장도 받았고, 출소하면 신학교에 가고 싶다고 해요.”

학대 트라우마

2014년 여름 방영된 TV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는 정신과 전문의가 교도소를 정기적으로 찾아가 수감자를 치료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교도행정 당국이 허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교도소 내에서는 목회자들이 상담해주는 수준이라 전문적인 치료는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라고 했다.

“비단 지군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남편의 가정폭력이 심해 아들 둘을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고 한강에 뛰어들었다가 구조된 엄마가 있어요. 살인죄로 7년가량 복역하고 나왔는데,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죄책감에 자살하고 말았어요. 2000년대 초반 부산에서 신부가 성폭행한 사건이 벌어져 떠들썩했는데, 그 사건 피해 아동의 오빠가 고등학생이 돼 성폭행을 저질러 구속됐어요. 이 오빠에 대해서도 상담 치료를 허락해달라고 했지만 거절됐죠.”

 

울산 계모 사건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2014년 4월 11일, 울산지방법원에서 이명숙 변호사가 숨진 아이의 생모를 감싸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이처럼 학대의 트라우마는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한다. 2013년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의 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가정폭력 가해자 중 과거 가정폭력을 겪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3배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신 의원도 가족 중 성폭행을 겪은 아동이 있으면 남자 형제는 나중에 성폭행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변호사는 “법적인 부분과 정신적 치료가 동시에 이뤄질 수 있게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했다.

울산·칠곡 사건에서 공동변호인단을 꾸린 여변은 내친김에 서울지방경찰청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서울시내 31개 경찰서에 여변호사를 배치했다. 아동과 여성 관련 사건 수사 단계에서부터 피해자 지원에 나서는 것이다. 또 아동학대 사건을 전담해서 맡아줄 공익활동변호사도 위촉했다. 이 변호사는 “얼마 전 어느 독지가가 1억 원을 기탁한 게 큰 도움이 됐다”며 “앞으로는 여변에서 아동학대 관련 연구 활동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사무실은 유지가 됩니까.

“2014년에는 세월호 사건까지 맡느라 제 업무의 80% 이상이 공익 활동이었어요. 대구, 울산, 광주 등지를 다니느라 새벽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는 날도 부지기수였죠. 하지만 많은 분이 고맙다고 해주시니까, 그 마음이 제 사무실이나 가족을 지켜주고 키워준다고 생각해요. (사무실 운영이) 나빠지진 않았어요. 재벌 되려고 하는 일도 아니고요.”

1987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 변호사는 1990년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는 여성 변호사가 10여 명뿐이고 그나마 대부분 대형 로펌 소속이었기 때문에 가정폭력, 성폭력 등의 사건을 취급하는 여성 변호사가 드물었다. 그가 개업하자 여성의 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아동복지센터,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등에서 도움 요청이 쇄도했다. 그는 “이 기관들을 찾아다니며 무료로 상담해주고 무료 소송 구조를 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 여성·아동 문제 전문가가 됐다”고 말했다.

▼ 신 의원도 국회로 가셨고…. ‘이명숙도 정치할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런 얘기는 15년 전부터 들었어요. 정권 바뀔 때마다 이런저런 제안도 왔고요. 정치를 하려면 진작 했겠죠. 그저 내가 할 수 있으니까, 나를 필요로 하니까 묵묵히 이 일을 하려 합니다.”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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