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고시생 기숙사 1호 장학생 
女변호사 없던 시절 아동문제 관심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이혼사건’ 해결 대명사 
1987년 당시 女변호사 10여명
법정에 서면 신기한듯 바라봐 
개업 후 가정법원 상담소와 인연

사각지대 아동인권 지킴이
조두순·도가니 사건 무료 변론
굵직한 아동학대 사건 도맡아
미성년 성폭행 처벌 강화해야


올초 벌어진 ‘인천 어린이집 폭행 사건’은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반찬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육교사가 네 살배기 아이를 폭행하는 장면이 생중계되면서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아동의 인권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말할 수 없는 그들을 위해 오랫동안 목소리를 높여 온 사람이 있다. 이명숙 사단법인 한국여성변호사회장(52) 얘기다. 그는 울산·칠곡 계모 사건, 조두순 사건, 인화학원(도가니) 사건 등 어린아이의 인권이 처참하게 짓밟힌 굵직굵직한 사건 현장마다 피해자의 편에 섰던 여성·아동 인권 전문 변호사다.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 대한변협 세월호참사특별위원회 위원장도 함께 맡고 있다. 개업 26년차 변호사, 두 딸의 엄마지만 약자들을 위한 사회에 대한 열정만큼은 청춘이 부럽지 않다. 

◆이대 솟을관 장학생, 사회공헌으로 ‘빚’ 갚아

인천 어린이집 폭행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달 28일 저녁 서울 서초동 법원 인근의 구이·샤부샤부 전문 식당 늘봄웰봄에서 이 회장을 만났다. 종업원이 “회장님 오셨다”며 반겼다. 사무실과 가깝고 샤부샤부와 된장찌개 맛이 깔끔해 평소 자주 오는 식당이라고 했다.

한우 등심이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는 동안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는 어린 시절 말을 또박또박 잘하고 글재주가 있다는 칭찬을 들었다. 대구·경북 대표로 전국 글짓기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학업에도 두각을 드러낸 이 회장은 대구 신명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보수적이었던 아버지는 딸을 타지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대구에 있는 경북대 사범대학을 지원하든지, 굳이 서울로 가야 한다면 꼭 여대를 가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들어간 학교가 이화여대였죠. 초등학교 때 일기장에 ‘법대에 가겠다’고 쓴 적이 있었는데 꿈이 이뤄진 셈이네요.”

당시 이대 법대는 사법 고시생들을 지원해 사회 진출을 돕기 위한 장학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 회장이 1기로 뽑혔다. 첫해에는 지방 여고에서 수석 졸업한 학생 8명을 선발, 4년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전액 면제해주고 매월 용돈까지 지급해주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고시생들을 위해 마련한 기숙사 이름을 딴 ‘솟을관 장학생’ 1기였다. 오영주 외교부 개발협력국 국장, 노정희 광주고등법원 부장판사, 금덕희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 지원장, 권성희 변호사 등이 이 회장과 함께 공부했던 1기생들이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등심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소금 대신 가게에서 직접 만든 간장 소스를 찍으니 감칠맛이 더했다. 이 회장은 대학 시절 도서관과 매캐한 최루탄 연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가까운 연세대에서 데모가 있는 날이면 최루탄 가스가 이대 도서관까지 날아왔다. 매운 연기에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도 “나는 고시공부로 사회변혁을 이뤄보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이를 악물고 공부한 이 회장은 졸업 이듬해인 1987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곧바로 개업했다. 

당시만 해도 여성변호사는 10명 남짓이었다. 법정에 가면 여성 변호사의 모습이 신기한 듯 방청객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던 시절이었다. 여성·아동 문제는 당연히 남성 변호사들의 관심 밖이었고 법의 사각지대였다. 그가 개업하자 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아동복지센터,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등으로부터 도움 요청이 쇄도했다. 그렇게 기관들에서 무료 법률 구조를 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 여성·아동 문제 전문가 길로 접어들었다.

◆어릴적 부모 사랑이 아동학대 예방 

가게의 또 다른 대표 메뉴인 샤부샤부가 나왔다. 얇게 저민 한우와 채소를 담백한 육수에 끓여내 정갈한 맛이었다. 종업원이 채소와 고기를 보기 좋게 개인 접시에 올려줬지만 이 회장은 한두 젓가락을 뜰 뿐이었다. 할 얘기가 많아서였다. ‘변호사 이명숙’은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이혼사건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 중 하나다. 법정에서 수년간 치열하게 다툰 상대방이 몇 년 뒤 ‘그때 이혼하고 재혼했는데 다시 이혼하고 싶다. 도와 달라’며 의뢰인으로 찾아 온 적이 있을 정도다. 전과 경력이 많은 이혼 소송 상대방이 한동안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며 협박을 한 적도 있었다. 

이혼 사건을 많이 하다 보니 특이한 이력도 생겼다. 1997년부터 KBS1 라디오에서 ‘이명숙 변호사의 가정법원’이라는 코너를 만들어 7년간 진행했다. 라디오를 듣던 KBS PD가 이런 아이템으로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해서 탄생한 것이 이혼 사연을 담은 법정 코너로 유명한 KBS2 TV의 ‘사랑과 전쟁’이다. 이 회장 사무실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의 자료를 원고로 쓰기도 했고, 이 회장이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변호사로서 맡은 사건들은 아동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또 다른 계기가 됐다. 가정이 파탄 나는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이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과 ‘도가니 사건’의 피해자들을 변호하면서 아이들을 돕겠다는 마음은 더욱 깊어졌다. “피의자들을 보니 하나같이 어릴 적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다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부모의 사랑 없이 자란 아이가 흉악범죄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거죠.” 

이 회장은 2008년 조두순 사건의 피해 아동 나영이(가명·당시 8세)와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2011년 모친을 살해하고 시신을 8개월간 방치했던 지모군(당시 18세)에게는 생일날 면회도 갔다. 항상 옆에서 지켜보고, 사랑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게 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특히 취학 이전 아이들은 가능한 한 어린이집 같은 위탁기관에 맡기지 않고 부모가 직접 사랑을 주는 게 좋아요. 탄력근무제, 육아휴직 등 맞벌이 부부를 위한 다양한 일·가정 양립 정책이 그래서 더 절실하다고 봅니다.”

◆10여년 지기 ‘나우리’팀은 든든한 버팀목

 

샤부샤부를 다 먹고 나자 육수에 밥을 넣어 뭉근하게 끓여낸 채소 죽이 나왔다. 이 회장은 이 식당을 종종 함께 찾는 멤버들이 있다고 얘기를 꺼냈다. 모임 이름은 이 회장의 사무실 이름을 따 ‘나우리’라고 지었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연세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이영주 부천지청 차장검사, 황은영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여성아동범죄조사부 부장검사,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조인섭 변호사, 김영희 이대 교수, 정대련 동덕여대 교수, 이호균 아동권리모니터링센터 센터장, 이정희 전 서울시 아동복지팀장 등이 주축이다.

여성·아동·성폭력 분야의 대형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이들은 머리를 맞댔다. 조두순 사건 당시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였던 이 회장은 사건을 담당한 수사기관과 법원에 대한 진상조사를 진행했고, 신 의원은 나영이에 대한 의료 지원을 해줄 기관을 찾았다. 이들의 노력 끝에 나영이는 배변 주머니를 제거하는 수술까지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각자의 영역에서 힘을 모아 대책을 마련한 사건이 많이 있어요. 지금도 여성·아동 문제라면 자비를 털어가며 봉사하는 열성 멤버들이죠. 아직도 할 일이 많아요. 앞으로는 미성년자 성폭력범에 대한 양형을 높이는 일, 자기 자식을 살해하는 비속살인을 가중처벌 대상 범죄로 만드는 작업을 함께 해보려고 해요.” 

◆여성 후배 변호사들 체계적으로 돕고 싶어

4000여 여성 변호사가 회원인 여성변호사회의 수장에 작년 취임해 임기 절반을 넘긴 이 회장은 올해도 여성 변호사들을 위해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는 지난해 아동청소년 문제 상담을 위해 서울 소재 31개 경찰서마다 여성변호사 한 명을 배치하고 52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자문변호사 2~3명씩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했다. 올해는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시켜 제도를 정착시킬 계획이다. 

임신·출산 등 부담에 직장에서의 차별적 대우 등으로 힘들어 하는 젊은 여성 변호사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일도 풀어야 할 숙제다. “사건 수임은 갈수록 줄어드는 데다 어려움을 하소연할 데가 없어 힘들어하는 여성 변호사들이 많아요. 선후배 변호사끼리 멘토-멘티 관계를 맺어주는 등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볼 겁니다.”

 

■ 이명숙 회장의 단골집 늘봄웰봄 
육질 좋은 1등급 한우, 두툼한 등심·샤부샤부 인기


 

이명숙 회장이 자주 찾는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지하 ‘늘봄웰봄’은 법조인들이 자주 찾는 구이·샤부샤부 전문 식당이다. 저녁에는 등심 등 구이류를 메인으로 제공하며, 육질이 좋은 1등급 한우만 사용해 두툼하게 썰어낸다. 점심 인기 메뉴인 샤부샤부는 담백한 육수에 배추, 부추, 버섯, 대파 등 각종 채소와 얇게 썬 한우 등심을 넣어 끓인 후 개인 접시에 담아준다. 가게에서 직접 만든 소스가 깔끔하다. 칼국수와 죽 가운데 선택해 후식을 먹을 수 있다. 한우모둠구이 1인분 3만5000원, 등심불고기 1인분 2만5000원, 샤부샤부 1인분 2만5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 (02)599-8804
■ 1991년 설립된 女변호사회…양성평등·여성권익수호

1991년 설립돼 강기원 변호사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 기본적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 양성평등을 기초로 한 여성정책 및 제도의 개발과 건의, 여성변호사의 권익 옹호 등이 설립 목적이다. 황산성 변호사가 2대, 조배숙 변호사가 3대 회장을 맡았고, 6대 박보영 회장은 현재 대법관으로 재직 중이다. 대한변호사협회 내에 여성변호사특별위원회,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위원회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 이명숙 회장 

△1963년 4월30일 경북 예천 출생 △대구 신명여고 졸업 △이화여대 법대 졸업 △고려대 법무대학원(의료법학) 졸업(석사) △이화여대 법대 박사과정(가족법) 수료 △제29회 사법고시 합격 △1990년 3월 변호사 개업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 △국무조정실 아동정책 자문위원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경찰청 4대악 근절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부회장 △법무법인 나우리 대표변호사

정소람/배석준 기자 ram@hanky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