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 “끝까지 범죄 증명할것”… 대책위 “침묵 강요하는 판결”
[안희정 1심 무죄]여성단체-미투 피해자들 강력 반발
여성단체-지지자 충돌 14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대한 1심 재판이 열린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여성단체 회원(왼쪽)이 안 전 지사 지지자들의 플래카드를 뺏으려고 하면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이게 왜 위력이 아닙니까!” “안희정은 사과하라.”
14일 오전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법원을 나서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를 향해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 여성들이 소리쳤다. 피해 당사자인 김지은 씨(33)와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폭로자들은 이번 판결에 강력히 반발했다. 문화계와 여성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김 씨는 판결 직후 대책위를 통해 입장문을 발표했다. 변호를 맡고 있는 장윤정 변호사가 대신 읽은 입장문에서 김 씨는 “무섭고 어둡고 추웠던 긴 밤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무서웠고 두려웠다. 침묵과 거짓으로 진실을 짓밟으려던 사람들과 피고인의 반성 없는 태도에 지독히도 아프고 괴로웠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어 “이 부당한 결과에 주저앉지 않겠다. 굳건히 살고 살아서, 안희정의 범죄 행위를 법적으로 증명하겠다. 끝까지 함께해 달라”고 강조했다.
김 씨는 “재판정에서 피해자다움과 정조를 말씀하실 때 결과는 이미 예견됐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리 예고됐던 결과”라며 심리 과정에서 재판부의 부적절한 언행이 있었다는 주장도 했다.
대책위도 기자회견에서 “성폭력을 인지하고, 사회에 알리기까지 수백 번 고민할 피해자들에게 이번 판결은 침묵에 대한 강요가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사법부의 책임을 입법부로 미룬 것”이라며 현행 법체계에서 안 전 지사를 처벌하기 어렵다고 밝힌 재판부를 비판했다. 정혜선 변호사도 “강제적 강간죄 요건을 완화해 해석하는 최근 동향에 역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오후에도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오후 6시 반경 ‘안희정 무죄판결에 분노한 항의행동’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정당·여성단체 관계자 등 시민 500여 명은 ‘안희정 무죄 선고한 사법부 유죄’라고 적힌 현수막을 걸고 재판부의 판단을 규탄했다.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도 오후 7시경 무죄 선고에 항의하는 문화제를 개최했다
미투 관련 첫 판결에서 무죄 판결이 나자 미투 폭로자들은 크게 실망했다. 2월 문단 내 성폭력 경험 사실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나도 충격을 받았다. 나를 포함한 다른 미투 사건에 이 판결이 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극계 미투에 동참했던 A 씨는 “너무 안타깝다. 권력형 성폭행을 용기 내 고발하는 분들이 더 주저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권력형 미투가 권력 때문에 무마되고 주저앉을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명인 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는 “사법부가 원론적으로 법률에 적시된 대로만 판결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전향적이거나 시대에 맞는 판단이라고 보긴 힘들다”며 “문단에서 계속해서 2차 가해가 벌어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박민정 소설가는 “이번 판결이 절망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싸우겠다”고 했다.
여성계의 시각은 엇갈렸다. 이명숙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변호사는 “지위나 권력이 작용하는 범위를 어디까지 보느냐에 대한 해석이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며 “재판부는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했지만 판례를 바꿔야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합리적 판결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노영희 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는 “김 씨 측이 안 전 지사의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이 부족했고, 주장이 모순되거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볼 만한 부분이 있다”며 “법리에 충실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진희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피해자에게 유리한 증언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재판부가 엄격하게 판단을 한 것 같다”며 “현행 법체계에서만 유무죄를 판단해야 하는 재판부가 한계를 마주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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