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무전유죄' 조선대 의전원 폭력사건 공탁금 500만원 논란
"저는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는데 가해자가 법원에 돈을 맡겼다는 이유만으로 풀려난다는 게 말이 되나요?"
폭력 사건 피해자인 A씨는 가해자에 대한 선고 직후 법정 밖으로 나와 억울함을 호소하며 울부짖었다. 가해자가 죄질에 맞는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해 합의하지 않았는데 공탁 때문에 형이 대폭 감형됐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최근 '조선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생 데이트 폭력' 사건에서 '공탁'이 가해자에 대한 양형 요소 중 하나로 고려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통상 형사 사건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그 나름의 성의 표시를 해 가벼운 처벌을 받고자 할 때 이용하는 제도가 '형사공탁' 제도다.
법원은 피해자가 공탁금을 가져갔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피해배상이 됐다는 점을 고려해 형량을 정한다. 피해자가 가져가지 않은 공탁금은 국고에 귀속되거나 가해자가 되가져간다.
하지만 이런 원래 취지와 상관없이 가해자가 감형받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형사공탁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일부 변호사들은 "감형받으려면 공탁을 하라"고 형사 재판을 앞둔 가해자에게 권하기도 한다.
또 법원에 돈을 맡기면 형량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도 불거진다.
조선대 의전원 데이트 폭력 사건은 피해자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공탁이 양형에 반영된 대표적 사례다.
이 사건을 맡았던 광주지법 형사3단독 최현정 판사는 가해자 박모(34)씨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박씨가 법원에 500만원을 공탁했다는 것 역시 형량을 낮춘 이유 중 하나로 고려됐다.
하지만 이 사건 피해자는 박씨를 엄하게 처벌해줄 것을 탄원하고 있다. 또 "피해자의 평소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도는 등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정황도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가해자가 피해 회복에 대한 진지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형사공탁 감형의 당초 취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런 사례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피해자가 공탁금을 찾아갔는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지한 사과를 했는지 여부와 상관 없이 형을 낮출 요소의 하나로 '공탁'을 인정하고 있다.
현행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표에 따르면 살인 범죄·성 범죄의 경우 '상당 금액 공탁', 즉 '합의에 준할 정도의 상당한 돈을 공탁한 경우' 형을 낮추는 요소로 고려한다.
또 폭력 범죄의 경우 감형 사유의 하나인 '피해 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한 경우'에 공탁을 포함한다.
이렇다보니 무거운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조차 법원에 일정한 돈을 맡기면 항소심에서 형을 감형받는 사례도 종종 나타난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하고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법원의 이런 판결 경향에 대해서는 "공탁이 감형 요소로 고려될 수 있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일부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엄벌하고 싶어 합의하지 않았는데 가해자가 법원에 돈을 맡겼다는 이유만으로 형이 감형됐다"며 울분을 토하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일부 가해자들은 형이 확정되면 피해자가 공탁금을 받아가고 있지 않은 사이에 공탁금을 몰래 되가져가기도 한다.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이명숙 변호사는 "피해자와 실질적 합의가 없는 경우에도 공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감형을 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며 법원 입장을 비판했다.
또 "피해자와 합의가 전혀 없었는데도 공탁을 합의와 비슷하게 고려해 감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돈만 있으면 형이 깎인다'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도 불거질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피해자가 공탁금을 찾아가지 않는 사이 공탁금을 되가져가는 가해자의 사례도 종종 있다"며 "공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감형하는 현행 제도에는 문제가 있으며 이런 여러 사정에 대한 검토 후 형사공탁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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