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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올해의 인물’ 이명숙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2015.12.23)
admin
2018-02-24      조회 3,993   댓글 0  

‘올해의 인물’ 이명숙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여성 변호사들 선한 영향력 끼쳐

 
엄마의 마음으로 여성 변호사들 공동 변호인단 구성해 울산·칠곡 사건 무료 변론

충격적인 인천 11세 여아 학대 사건“특단의 조치로 아동학대전담 경찰청 만드는 방안 고려해야”

·우리 부설 인권기구 만들어 더 깊이 있는 공익 활동 펼치겠다 

▲ 올해 변호사 생활 25년째인 이명숙 한국여성변호사회장은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이 있다. 예전엔 혼자 해왔는데 이제는 여성 변호사들이 뭉쳐 여성·아동 인권 사건의 무료 변론 활동을 한다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신문 선정 ‘올해의 인물’ 중 제가 가장 최연소라니 부담스러우면서도 큰 영광입니다. 60∼70대 여성운동 선배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더 많은 일을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어요.”

이명숙(52·법무법인 나·우리 대표변호사) 한국여성변호사회장은 ‘올해의 인물’ 선정 소식을 전하자 “아직 제대로 일을 시작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역대 최연소라니 지금보다 더 맹렬히 일하라는 지지와 격려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본보는 지난해와 올해 여성변호사회를 이끌면서 울산·칠곡 아동학대 사건에 여성 변호사들로 이뤄진 공동 변호인단을 구성해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활동을 해온 공로로 이 회장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이 회장과 여성 변호사들은 개인의 성공에 머물지 않고 약자의 아픔을 보듬어 공동체의 보다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데 힘써왔다.

굵직굵직한 사건 중심에 그가 있다

15일 아침 커피잔을 놓고 서울 반포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그에게 “건강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부터 물었다. 옆에서 수년간 그를 지켜보면서 많은 일정을 어떻게 소화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한 시간씩 한강변에서 걷기 운동을 하는데 자주는 못 해요. 건강 체질을 타고난 것 같아요.” 고시 공부할 때부터 밤을 새우고 새벽 네다섯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도 그다지 피곤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올 한 해 그는 사건 기자처럼 바삐 현장을 뛰어다녔다.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살인 사건, 울산 계모 살인 사건, ‘도가니’ 사건으로 불린 광주 인화학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세월호 사건,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서울 공립고 교사 성추행 사건, 인천 11살 여아 아동학대사건…. 우리 사회를 뒤흔든 굵직굵직한 여성·아동 인권 사건의 한가운데 그와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있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어요. 그동안은 혼자 여성·아동 인권 소송 지원을 했다면 이젠 회원 4000명을 둔 여성변호사회 이름으로 뭉칠 수 있어 기쁩니다. 공동 변호인단을 구성해 소송 지원과 법률 지원을 해오면서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된 거죠. 국민적 공분이 일어난 사건을 여성 변호사들이 묵묵히 지원해 오고 있다는 데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는 8대 회장으로 취임한 직후인 지난해 1월, 여성변호사회 소속 회원들에게 울산 계모 사건의 피해 아동이 손과 다리, 발에 심한 화상을 입은 사진을 첨부한 이메일을 보냈다. 여성 변호사들은 공분했고 엄마, 언니 된 마음으로 순식간에 155명이 무료 변론을 지원해 공동 변호인단이 꾸려졌다. 당시 그는 울산 계모 아동학대 살인사건의 진상조사단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칠곡 계모 사건은 재판부의 단단한 벽을 체감한 사건이라 내내 답답했다. 편견과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는 재판부에 크게 실망한 사건이었다. 그는 “대구지검 차장검사가 울산 사건의 가해자가 30 정도의 악행을 저질렀다면 칠곡 계모는 100이라고 하더라”고 꼬집었다.

“칠곡 사건 1심을 맡은 대구지방법원 재판부는 검사가 있는데 왜 피해자 변호사가 필요하냐면서 법정에서 나가라고 내쫓기까지 하더군요. 새벽 6시 열차를 타고 아침밥도 거른 채 무료 변호를 하려고 대구까지 갔는데 퇴정 요구를 당한다는 게 어이없고 자괴감이 들었어요. ‘사법 횡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동료 변호사들조차 밉보이면 평생 힘들다면서 아무도 사건 기록 복사 하나를 안 해줬어요. 향판의 폐해를 실감한 사건이었죠.” 반면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울산 계모 사건, 도가니 사건의 재판부는 피해자의 인권과 아픔을 공감하고 많은 배려를 해준 재판부였다. 그는 대한변협 세월호참사 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이 회장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가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힘을 쏟아왔다. 새해를 앞두고 터진 인천의 여아 학대 사건은 아동학대가 아직도 근절되지 않았음을 보여줘 충격을 줬다. 11살 소녀는 친부와 동거녀로부터 2년간 집안에 갇힌 채 학대와 폭행을 당해왔다. 너무 굶주려 몸무게가 16kg밖에 나가지 않았다.

“경찰이 ‘2년간 학대 당했다’고 학대 기간을 2년으로 선긋기하는 것을 보고 칠곡 계모 사건처럼 빙산의 일각만 수사, 재판하는 것이 아닐지 걱정돼요. 여아의 성장 상태나 게임 중독에 빠진 친부나 동거녀의 인성으로 봐서 오래 전부터 학대를 받아왔을 텐데 소아정신과 의사나 상담원 등을 연결해서 신뢰 관계가 만들어진 뒤 자세한 학대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 회장은 “임기응변 차원의 미봉책이 아니라 제대로 된 연구, 분석과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사건처럼 정부 차원에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1년이건 2년이건 아동학대나 아동 성폭력에 관한 전반적인 실태 조사와 법·제도적 해결 방안 등을 연구한 뒤 아동학대전담 경찰청을 만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갑들의 성폭력 추방에 온 힘 

▲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변호사회의 활약상은 여느 여성단체 못잖게 역동적이다. 서울 시내 경찰서 31곳에 여성 변호사 1∼2명씩 솔루션 위원을 배치해 여성․아동 사건 자문과 소송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과 협약식을 맺고 전국의 52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3∼4명씩 여성 변호사들을 배치했고, 전국가정폭력상담소협의회에도 여성 변호사들을 자문 변호사로 연결해 지원키로 했다. 모 여성 독지가가 1억원을 쾌척해 아동학대 예방에 힘을 보태준 것도 여성변호사회의 신뢰도가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학대받는 아이들이 없어지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뛰어놀아야 한다’는 생각에 1억원이라는 큰 돈을 기부했어요. 여성변호사회 활동 덕에 울산 계모 사건으로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생기고 아동학대 사건에서 최초로 살인죄가 인정된 것을 격려해주고 싶어했지요. 그 기부금으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상근 변호사를 1년간 파견해 300여 건의 아동학대 관련 사건을 상담하고 소송 구조 활동을 벌였지요.”

이와 함께 조부모 면접 교섭권과 미성년자와의 성관계에서 동의나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의제강간 연령을 현재의 만13세 미만에서 만16세로 올리기 위한 입법개정 운동도 벌이고 있다. 여성 변호사들은 3개월에 한 번씩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함께 입법 포럼도 열고 있다.

또 한국인 남성과의 사이에서 출산한 필리핀 여성, 일명 ‘코피노 맘’들이 제기한 양육비 청구소송을 무료로 지원해주고 있다. 이 회장은 이와 함께 미국에서 대학, 고교에 다니는 두 딸과 함께 이혼 관련 법률 상식을 영어, 중국어로 번역한 『한·중·영어로 된 이혼법률상식』 책자를 발간해 이혼 소송을 벌이는 다문화 여성들을 위해 관련 기관에 무료로 배부하고 있다. 공익 활동도 ‘모전여전’인 셈이다.

성매매특별법 위헌 심판 소송에서는 여성변호사회 차원에서 팀을 만들어 자료 준비를 한 뒤 인권이사인 최현희 변호사를 합헌측 참고인으로 공개변론에 출석시켜 ‘합헌’ 주장을 펼쳤고, 봉천동 ‘조건만남’ 10대 소녀 살인 사건이 벌어진 후 모텔 업주를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에도 힘썼다. 이 회장은 “지난해와 올해 유달리 전직 국회의장의 캐디 성추행,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서울대 교수의 제자 성추행, 공립고 교사들의 학생 성추행 사건 등 우월적 지위에 있는 갑들의 성폭력이 기승을 부렸다”며 “엘리트들의 성폭력 횡포에 여성 변호사들이 한목소리를 낸 것이 뿌듯하다”고 했다.

가사 전문 변호사서 인권변호사로

그는 1990년 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여성 변호사가 10여 명에 불과하던 시절이다. 97년부터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 KBS 라디오에서 ‘이명숙 변호사의 가정법원’이라는 프로그램을 7년간 진행했다. 라디오 ‘김흥국 박미선의 특급작전’에도 수년간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또 이혼법정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소재를 제공하기도 했다. “‘사랑과 전쟁’이 처음 만들어질 때 PD와 작가가 찾아왔어요. PD 부인이 ‘가정법원’ 애청자라면서 드라마로 만들고 싶다더군요. 그래서 ‘이혼은 조정으로 끝나는 게 최선이다. 그런데 이혼조정 제도를 변호사도 모르고 당사자들은 더 모른다. 그러니 국민에게 조정 제도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조정위원장, 원고·피고 부부가 주인공이 되는 드라마를 만들어보라’고 권했어요.”

PD는 그의 사무실에 있던 사건 기록을 가져가 직업을 조금씩 각색해 드라마를 제작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탤런트 신구의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는 대사도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그는 ‘사랑과 전쟁’ 시즌1에서 10년간 법률 자문을 계속 해오다 시즌2 때는 솔루션 위원으로 TV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여성폭력과 아동학대 문제 전문가들의 모임인 ‘나·우리’는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이 회장과 신의진 새누리당 국회의원,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 등이 주요 멤버인 이 모임은 여성 문제나 아동학대 사건이 터지면 며칠씩 붙어 지내며 대책 회의를 하곤 한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치에 언제 입문할 거냐”는 질문을 15년 전부터 받고 있다는 그는 “사람들은 정치하려고 포석을 깔고 있다고 오해하는데 정말 정치를 할 요량이면 이렇게 힘든 일을 생짜로 안 한다. 정치하기에 좋은 그런 일을 한다”며 “아직은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는 내년에 나·우리 부설 기관으로 여성아동인권지킴이 역할을 제대로 할 기구를 만들어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공익 활동을 지원할 예정이다. 또 여성·아동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법연수원이나 로스쿨을 갓 나온 여성 변호사들이 자립할 때까지 6개월이나 1년간 나·우리 사무실도 지원해주고 싶다는 구상도 있다. 이 회장은 “일종의 멘토로 여성 변호사 인큐베이팅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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