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녀 중 한 명을 폭행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나머지 형제 자매들도 ‘정서적 학대’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아동학대가 늘어나면서 이들 남매처럼 간접피해 아동도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지원해 줄 수 있는 제도나 여건은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울산 사건이나 최근 경기 부천 사건처럼 친부모 모두 친권이 상실될 경우 남은 형제ㆍ자매의 보호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이 지역별로 제 각각이다. 부천 사건의 경우 법원이 남겨진 딸(9)에 대한 친부모의 친권을 정지시켰고, 아동보호기관 관장을 후견인으로 지정해 임시보호소에서 생활하면서 치료를 받게 했다. 이후에는 아동보호기관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해당 지자체의 아동복지심의위원회가 논의 해 위탁가정이나 시설입소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경우 지자체별로 해당 위원회가 없거나 있다고 해도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은 “친권자 없는 아이들의 보호조치 논의 등을 위한 위원회가 지자체별로 제각각이라 유명무실한 경우가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명숙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도 “지자체나 아동보호기관 판단에 따라 위탁가정이나 시설에 보내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미성년자인 아동의 의사와 복리후생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문제점이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울산 남매처럼 간접 피해 아동을 친척들에게 맡기는 경우라도 안전을 확실하게 담보할 수 없다. 유미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외할머니 등 친인척들이 피해 아동을 맡는 경우 부모가 죗값을 치르고 나오면 다시 아이들을 맡게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학대가정의 재결합으로 인한 2차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정상적인 가정으로의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면 미국과 같이 면접교섭(징역을 사는 부모와 아이의 관계 개선을 위한 만남)을 통해 관계를 회복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실제 서울가정법원 안에 이러한 기능을 하는 면접교섭센터가 있지만 이용률은 극히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모 친권이 있으면 손쓰기 힘들어
학대 정도에 따라 친부모에게 친권이 남아 있는 경우는 아동보호기관이나 지자체 개입이 더욱 어렵다. 경남 사천에 사는 이모(10)군은 지난해 지적 장애 3급인 두 살 터울 누나(12)가 엄마와 엄마의 동거남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하다 동네에서 성폭행까지 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이군은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상담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얘기했고, 경찰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장기보호명령이 떨어진 이군의 누나는 지역 그룹홈에서 보호를 받고 있지만 학대 정황이 의심되는 이군은 같이 살던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해 가정으로 돌려보내진 상태다. 이군 누나가 보호를 받고 있는 그룹홈 관계자는 “이군에게 정서적 학대 정황이 분명한데 엄마가 친권을 갖고 있고, 아이도 엄마와 같이 살겠다는 뜻을 밝혀 격리조치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답해했다. 실제 현행 아동복지법에는 ‘피해아동의 가족에게 교육 및 의료적ㆍ심리적 치료 등 필요한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제29조)는 등 포괄적인 조항만 적시돼 있다. 2014년부터 시행된 아동학대방지특별법에도 간접피해 아동을 보호하는 구체적 방안은 찾아볼 수 없다. 한 그룹홈 관계자는 “아특법이 강화됐다고는 하지만 친권 문화가 강한 우리 현실에서 수사권을 가진 경찰이 나선다고 해도 간접피해 아동을 적극 보호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인적ㆍ물적 한계 때문에 민간단체에서 도움을 요청해도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2014년 생후 4개월인 딸을 집어 던져 두개골 함몰에 이르게 한 남편과 이혼한 뒤 강원 동해에서 서울로 이사 온 이모(34ㆍ여)씨는 “당시 한 살 터울인 아들도 학대에 따른 피해 정황이 의심됐지만 손을 내밀어 주는 곳이 없었다”며 “사고 6개월여 만에야 수소문 끝에 민간 단체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한 아동보호기관 관계자는 “인력 부족 등으로 아동보호기관이 직접 피해아동을 감당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간접 피해아동까지 손을 쓰는 데 현실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