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피해자들은 ‘도망’에 이골이 나 있다. 당장 폭력에서 벗어났다가 돌아가는 과정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때린 사람은 편한데 맞은 사람은 겁에 질려 떠돌아다니는 게 현실이다.
가해자를 격리하는 제도가 없지는 않다. 법원 처분에 앞서 선제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도록 경찰 신고 단계에서부터 ‘긴급임시조치’를 취할 수 있다. 재발 우려가 크고 사안이 긴급하면 경찰이 주거지에서 가해자를 격리하고 주거지·직장 100m 이내 접근을 금지할 수 있다. 전화, 이메일 등의 접근금지 조치도 취할 수 있다.
경찰이 조사를 마치고 ‘임시조치’를 신청하면 검찰이 이를 법원에 청구하기도 한다. 이때엔 의료기관에 치료를 위탁하거나 유치장·구치소에 보낸다. 긴급임시조치나 임시조치를 위반하면 각각 300만원,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러나 과태료가 되레 발목을 잡는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활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물어낼 과태료가 피해자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셈이다. ‘금전 부담’이 가해자를 자극해 폭력이 재발하기도 한다.
허점은 법원의 보호처분에도 있다. 비교적 조치가 무거운 ‘감호위탁’ 처분은 거의 활용되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된 게 대표적이다. 감호위탁은 1999∼2013년 16건 집행되는 데 그쳤다. 감호위탁 명령을 받은 가해자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법이 정한 시설’에 구금하도록 돼 있는 탓이다. 법이 정한 시설은 현재 피해자 보호시설뿐이다. 피해자를 수용하기도 벅찬 곳에 가해자를 구금하라는 얘기가 된다.
치료위탁도 1999년부터 현재까지 연간 최고 35건가량 이뤄지는데 그쳤다. 이명숙 전 한국여성변호사회장은 29일 “감호나 치료를 맡을 시설이 전무하고 전문가도 없다”며 “법만 만들고 후속 조치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1년 말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 민사적 보호명령 형태로 ‘피해자보호명령제도’가 도입됐다. 격리, 접근금지, 통신, 친권행사 제한 등을 취할 수 있다. 2012년 187건이던 신청 건수는 2014년 455건으로 늘었다.
하지만 피해자가 이 제도 덕을 보기는 쉽지 않다. 기각률은 2014년 기준 19.3%에 이르고, 피해자가 스스로 취하하는 비율도 37.4%나 된다.
전문가들은 ‘체포우선주의’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민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상담팀장은 “지금은 피해자가 피신하려고 해도 옷가지를 챙길 시간조차 없다”며 “우선 가해자를 구금해 피해자에게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글=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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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가족 안의 괴물] 맞은 자가 피신해야하는 현실… ‘가해자 체포우선주의’ 필요. (2016.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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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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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안의 괴물] 맞은 자가 피신해야하는 현실… ‘가해자 체포우선주의’ 필요가해자 격리하는 제도 있지만 과태료 탓에 폭력 재발되거나 감호시설 없어 실효성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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