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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NAURY COLUMN

박정자 낭독극으로 들은 단종과 정순왕후, 곁을 지킨다는 것

2026.11.08조회 1

핵심 요약

박정자 배우님의 목소리로 단종과 정순왕후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지난 10월 2일, 나우리 아트센터에서였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두 사람이 영도교에서 헤어지는 대목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낭독으로 들은 정순왕후의 이야기

올해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단종의 비극에 마음 아파한 사람이 많았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열린

모노 낭독회였다.

박정자 배우님은 깊고 묵직한 목소리로

단종과 정순왕후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역사 한 편을 읽어 주는 시간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여인의 긴 세월과 그리움이

목소리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담담해서 더 슬펐고,

목소리만으로 마음이 먹먹해지는 순간도 있었다.

'영이별 다리'에서 헤어진 두 사람

왕위를 빼앗긴 단종과 정순왕후는

청계천 영도교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고 전해진다.

그 뒤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 다리를 '영이별 다리'라고 불렀다.

영영 헤어지는 줄 알고 헤어졌을까.

어쩌면 다시 만날 날이 있으리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날이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단종은 영월에서 열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순왕후는 동망봉에 올라 영월 쪽을 바라보며

긴 세월을 살다

여든둘에 생을 마쳤다.

김별아 작가의 소설 《영영이별 영이별》에서

정순왕후는 세상을 떠난 뒤 자기 삶과 사랑을 직접 들려준다.

그 속의 정순왕후는 슬픔에 갇힌 여인만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하루하루를 살아낸 한 사람이다.

낭독을 들으며 떠오른 얼굴

듣는 동안

가족과 그리운 사람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1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영영 이별하게 된

어머니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조금만 더 자주 찾아뵐 걸.

전화 한 통이라도 더 드릴 걸.

함께 있을 때는 몰랐던 평범한 순간들이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건성으로 인사하고,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내고,

고맙다는 말은 다음으로 미뤘다.

내일도 볼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곁을 지킨다는 것

또 하나 오래 남은 생각이 있다.

부부란 서로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

단종과 정순왕후에게

함께 누린 시간은 너무 짧았고,

헤어진 뒤에는 서로를 그리워하는 긴 세월이 남았다.

이혼 법정에서 37년 동안

수많은 부부를 만났다.

돈 문제로, 병으로, 자녀와 집안일로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그럴 때면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말은 쉽게 나오지만,

"우리 함께 견뎌 보자"는 말은

끝내 하지 못하는 부부도 있었다.

물론 함께 사는 것이

더는 행복하지 않은 부부도 있다.

그 선택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그날 낭독을 들으며 생각했다.

힘든 순간에 상대를 탓하기보다

내 편으로 여겨 주는 마음.

어쩌면 그런 마음이

부부의 곁을 지켜 주는 것은 아닐까.

잃은 뒤에도 이어지는 하루

정순왕후는 단종을 잃은 뒤에도

오랜 세월을 홀로 살았다.

자수와 품팔이로 하루하루를 이어 갔다고 전해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삶은 멈추지 않는다.

슬픔을 안고도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또 하루를 살아야 한다.

그 세월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혼 상담실에서도 비슷한 얼굴을 자주 본다.

세상이 무너진 것 같다던 사람들이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온다.

슬픔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슬픔을 안고도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 가면서.

누군가에게 기대어 사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자기 힘으로 다시 일어서야 하는 순간도 있다.

정순왕후의 긴 세월을 떠올리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에도 이어지는 삶을 생각했다.

그날 돌아오는 길에

어쩌면 단종과 정순왕후의 이야기에 남은 것은

거창한 사랑의 약속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날 돌아오는 길에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얼굴을 마주하는 평범한 하루였다.

내일도 당연히 함께할 거라 여겼던 사람이

오늘 곁에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매일 누리면서도 잊고 사는

가장 큰 행복인지도 모른다.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이명숙 변호사의 이혼법정'에 먼저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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